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 바키 (문단 편집) == 현역 시절 == 사우스웨스트 대학을 졸업하고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마이너리그]] 트리플 A 하와이 아일랜더스 에서 뛰었으나 얼마 안가 방출당했고, 1962년 [[한신 타이거즈]]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일본]]으로 건너왔다. 투수들이 두 자릿수 [[등번호]]를 선호하는 일본 야구계에서 특이하게도 [[등번호]]는 4번을 달았다.[* 나중에 [[야부 케이이치]]가 이 등번호를 단 적이 있다.] 한신 입단 초기 공은 빨랐지만 제구력에 문제를 보이며 첫 시즌은 8게임 등판, 3패 평균자책 4.70의 초라한 성적만 남겼다. 그러나 투수코치 이던 [[스기시타 시게루]]의 맹훈련으로 하체를 강화하고 당시 [[무라야마 미노루]]와 함께 한신의 양대 에이스이던 [[고야마 마사아키]]의 슬라이더를 연구하면서 제구력을 키웠으며, 결정구로 [[너클볼]]을 장착하면서 바키의 기량은 급성장 하였다. 1963년 시즌 8승 5패 평균자책 2.49로 가능성을 보인 바키는 이듬해 1964년 46경기 등판, '''29승 9패 평균자책 1.89, 200탈삼진'''을 기록, 다승왕과 평균자책 1위를 거머쥐었고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사와무라상]] 까지 수상[* 이후 두 번째로 사와무라상을 탄 외국인 선수는 무려 52년이 지난 2016년에야 배출되었다. 주인공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크리스 존슨(1984년 6월)|크리스 존슨]]'''.]하며 명실상부한 한신의 기둥 투수로 자리매김 했다. 더불어 그 해 한신이 센트럴리그를 제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일본시리즈 에선 같은 미국인 투수인 [[조 스탠카]]가 이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난카이 호크스]] 에게 패퇴하였다(...).] 이후 고야마가 [[치바 롯데 마린즈|도쿄 오리온즈]]로 트레이드 되자 바키는 무라야마와 함께 한신의 에이스 쌍두마차로 마운드를 이끌었고 1968년 까지 5년 연속 두자리수 승리를 따내며 맹활약 했다. 1965년 6월 28일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바도 있다. 그렇게 승승장구 하던 바키는 선수생명을 깎아먹는 뜻밖의 사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1968년 9월 1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등판한 바키는 [[오 사다하루]]를 상대로 위협구를 던지며 난투극을 유발했고, 요미우리 타격 코치이던 '''아라카와 히로시'''[* 오 사다하루에게 외다리 타법을 전수한 코치이다. 오 사다하루 이전에 [[에노모토 키하치]]를 육성했다.]와 주먹다짐을 벌이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아라카와는 바키의 펀치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고 4바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아라카와 코치도 작은 체구와는 달리 [[합기도]] 유단자라 바키에게 잡혀 두들겨 맞으면서도 바키의 정강이를 계속 걷어찼다. 그 때문에 서로 심하게 싸우다가 크게 다치게 된 것. 이 난투극으로 바키의 현역 커리어가 끝장나기도 했지만 아라카와 코치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구단의 품위를 손상 시켰다며 [[교진군]] 코치 자리에서 해고 당했다.][* 그런데 [[벤치 클리어링]]이 수습된 후 다시 타석에 들어온 [[오 사다하루]]는 한신의 구원투수로 나온 [[곤도 마사토시]]에게 뒤통수를 직격하는 사구를 얻어 맞았다(...). 그럼에도 [[카와카미 테츠하루]] 감독은 직접 "곤도가 일부러 그런 공을 던질 리 없다"며 그라운드로 달려간 선수들을 불러들여서 이날의 두 번째 벤치 클리어링 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럴만도 한게 곤도는 당시 야구계 안팎에서 상냥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유명했기 때문. 곤도가 1973년 시즌 후 한신 감독이던 [[가네다 마사야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그를 두들겨 패버린 사건을 계기로 은퇴했을 때도 오죽하면 그랬겠나며 동정을 받았을 정도였다. ~~가네다가 한 짓이 워낙 [[막장|막 to the 장]]인지라~~ ] [[파일:bacque_arakawa.jpg]] 아라카와 코치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바키(맨 우측). 이 부상으로 인해 바키는 그 해를 끝으로 한신에서 퇴단하였고, 이듬해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로 적을 옮겼지만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단 1승도 못거둔 채 1969년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8시즌간 통산 성적은 '''251경기 등판, 100승 80패 평균자책 2.34'''.[* 일본에서 뛴 외국인 투수로는 조 스탠카와 함께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